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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세상의 이치 (2) 전운에 휩싸인 흑산도의 산채.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이 이곳을 맴돌고 있었다. 입구에 불청객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다들 어디 간 거죠?” “산채 입구는 열어놓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니.” “예상했잖아? 우리랑 맞서 싸우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 입구에 도착한 이들은 무당파의 일대제자 셋과 이대제자 다섯이었다.
그들은 산적들이 무서워서 도망간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 배분이 가장 높은 자가 왼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모두 조용히 해봐.” 그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길 잠시 후. 돌연 그의 얼굴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다행이군. 놈들이 아직 도망치지 않았어.” 산채 안으로 보이는 수십여 채의 작은 통나무집들. 산적들은 분명 그 안에 숨어있었다.
뒤이어 그들의 기(氣)를 감지한 누군가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 명도 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현희는 걱정도 참 많군. 오히려 잘된 일이야.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으니.”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요…….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요?” “제정신이야?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그냥 돌아가자고?” “아니, 그냥 저는…….” 지켜보던 일대제자 중 한 명이 그녀의 등을 검집으로 슬며시 밀었다.
“현희가 이대제자 중 제일이라며? 그럼 이번에 실력을 한번 보여주면 되겠구나. 어디 앞장서봐.” 떠밀리듯 성큼성큼 걷던 현희는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곧이어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저, 저기.” 흑산도의 산채 깊숙한 곳. 그곳에 두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참수당하기 직전의 죄수처럼 머리를 푹 숙인 채 말이다. 집결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던 무당파의 도사들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나이 든 산적 한 명이 박도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때 날카로운 박도 날이 그들의 목을 칠 듯 말 듯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한 걸음만 더 다가와 보아라. 그럼 이놈들의 목을 쳐버릴 테니.” 무당파의 도사들은 당황하면서도 몹시 분개했다.
“어, 어찌 이런 잔혹한 짓을 벌이는 것이냐!” 일행 중 무공과 배분이 가장 높은 청진이었다. 로투스바카라
그의 호통에도 산적은 코웃음을 치며 박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네놈들의 입에서 어찌 감히 잔혹이라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도사라는 녀석들이 보복이라는 명분 아래 살인을 즐기는 것이 바로 잔혹이 아니더냐?” “모든 것은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럼 무당파는 지금껏 무고한 자를 핍박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더냐!” 그 순간 치켜세워진 산적의 박도가 도사의 목을 내리쳤다.
서컹-! 오픈홀덤
수급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몇 바퀴를 굴렀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도사들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현, 현성?” “현성 사제가 맞아요…….” 아직 또 한 명이 남아있었다. 그와 함께 이동했던 현호일 것이다.
누군가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이미 죽어있는 거 아니에요?” 고개를 푹 숙인 채 뒷모습만 보이는 상황이었기에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청진이 고개를 한 번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방금 꿈틀거렸어.”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이미 산적은 또다시 박도를 치켜들고 있었다.

도사들이 당황하고 있을 찰나. 무당파의 일대제자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질주를 시작했다.
돌발적인 상황에 모두가 움찔했다. 청진이 말리려 했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벼락처럼 내달리는 움직임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죽여버리겠다!” 이미 산적의 박도는 무릎 꿇은 도사의 목덜미로 향하고 있었다. 그 틈새로 검날이 파고들며 쳐내기를 시도했다. 세이프게임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목덜미로 향하던 박도가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닌가. 바뀐 목표물은 달려오던 도사의 앞가슴이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무당파의 일대제자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서걱-!

날카로운 도날이 그의 앞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그러나 잘려나간 것은 도복뿐이었다. 한 치 차이로 비껴나간 것이다.
일대제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휘청거렸다. 방금 자신이 산적 따위에게 죽을 뻔한 일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산적이라면 이런 치욕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박도를 움켜쥔 인물이 바로 유진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쉽지 않군.’ 유진산의 발이 바닥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창 한 자루가 눈앞으로 떠올랐다.
손아귀로 창을 움켜쥐자 그의 기세가 급변했다. 세이프파워볼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공격을 개시하자 창끝이 세 갈래로 갈라지며 상대의 전신을 압박해갔다.

‘이 합.’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이 합(二合)을 겨눌 시간이 전부였다. 도사들 중 가장 강한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카캉-!!!
첫 번째 공격이 막히는 소리였다.
유진산은 미간을 좁히며 창을 회수했다. 필살의 일격을 준비하기 위해 찰나의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의 입이 쩍 벌어지며 대성일갈(大聲一喝)이 터져 나왔다.
“갈!!!” 급작스러운 호령에 상대가 잠시 흠칫했다. 그 순간 유진산의 창끝이 진동했다.
상대를 향해 나아가는 창끝이 바람을 가르기 시작했다.
유가창법 삼초식 비진멸창(飛進滅槍).

한 줄기 붉은 빛살이 상대의 앞가슴을 향해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쏴아아앙-!
무당파의 도사도 그냥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검날이 태극을 그리며 창끝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콰아아앙-!
거센 폭음이 뿜어진 순간 붉은 빛줄기가 태극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푸우욱-!
“크헉!”
성공이었다. 계획대로 한 명을 먼저 쓰러트렸지만 기뻐할 틈이 없었다.

유진산은 창을 뽑자마자 방어 동작을 취해야 했다. 측면에서 매서운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에 눈이 뒤집힌 일대제자 청진이었다.
유진산은 다급히 창을 잡아당기며 창날을 가슴 앞으로 밀어 넣었다.
콰앙-!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손목이 떨어질 것 같은 통증이었다. 동시에 그의 발은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가고 있었다.
내공은 유진산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나, 무당파의 상승무공이 문제였다.
부드러우면서, 강력한 기세를 뿜어내는 무공은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죽어!”

그는 뒷걸음질 치는 유진산을 정신없이 압박해갔다. 동시에 조금씩 무너지는 자세를 보며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청진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등 뒤에서 무릎 꿇고 있던 이대제자가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푸우욱-!
청진의 등을 뚫고 앞가슴으로 검 끝이 튀어나왔다.
“크헉! 이게 무슨 짓…….” 고개를 슬쩍 돌려본 청진은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그는 자신의 사질이 아니었다. 흑산도의 채주인 풍호였다.
그가 놀라는 사이 유진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치명상을 입고, 앞뒤에서 유진산과 풍호의 협공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푸우욱-! 촤아악-! 서컥-!
눈 깜짝할 사이 청진은 전신이 난자되어 쓰러졌다.

그는 무당파의 일대제자 중에서도 촉망받는 인재 중 하나였다. 방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쓰러질 실력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다른 도사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고작 산적 따위에게 무당파의 일대제자가 둘이나 당하다니. 문파의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망신이었다. 방심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분노의 고함을 내질렀다.
“모두 쓸어버려!” 이성을 잃은 도사 여섯 명이 동시에 질주를 개시했다.
그들은 둘이서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피하시지요, 어르신.” 고개를 끄덕인 유진산은 풍호와 함께 측면으로 내달렸다.
무당파의 도사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그들의 거리가 오 장 이내로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돌연 도사들이 달리고 있던 지면이 푹하고 꺼져버렸다.
푸석-!
화들짝 놀란 도사들이 동시에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여섯 명 중에 둘이 지하로 푹 꺼져버리고야 말았다.
며칠 전 청랑을 잡기 위해 파놓았던 구덩이였다. 일부로 이들을 이곳으로 유인해 온 것이다.
“뭐, 뭐야?” 진세가 흩어진 무당파의 도사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유진산과 풍호가 등을 돌렸다.
“지금이다! 모두 나와!!” 유진산의 고함과 함께 사방에서 산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그들의 모습이 마치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물고기 떼와도 같았다.
안색이 창백해진 도사가 무엇인가를 소리치려고 했다.
“태, 태극칠성진을…….” 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무당파가 자랑하는 강력한 검진이었지만, 그것을 펼치려면 일곱 명이 필요했다. 당황한 나머지 인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더군다나 두 명은 구덩이에 빠져 있지 않은가.
“빌어먹을…….” 잠시 후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듯, 그의 신형이 산적들의 물결에 집어 삼켜졌다.
팔방에서 끝없이 다가오는 검날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그 틈에는 풍호와 유진산의 무기도 섞여 있었다.
푸욱-! 서걱-! 촤아아악-!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혼으로 변해갔다. 다른 도사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반각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콰앙-!
산적들의 포위를 뚫고 도사 한 명이 공터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일대제자였다.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으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를 확인한 풍호가 다급히 소리쳤다.
“놓치면 안 돼!!!” 절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놓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놈이 무당파로 돌아간다면 재앙이 닥쳐올 것이 분명했다.
산적들이 다급히 앞을 가로막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오늘 일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도사의 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더는 놈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없었다.
산적들의 눈이 절망으로 가득 찼을 때였다.
돌연 그들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한 줄기 붉은빛이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정확히 일대제자의 등 뒤를 향했다.
푸욱-!
붉은 창기를 가득 머금은 장창이 그의 복부를 파고들며 절반이나 쑤셔박혔다.
어느새 다가온 유진산이 창을 뽑아 들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창을 회수한 그는 전황을 살펴보았다.
곳곳의 소란은 점차 사그라지고 있었다. 무당파의 도사를 가둬놓은 구덩이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직 한 명이 그곳에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오십여 명의 산적이 둘러싸고 창과 활 따위를 겨눈 상황이었다.
“비켜봐.” 현희라 불린 도사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저항을 포기한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적들이 풍호를 바라보았다.
“어찌할까요, 채주님?” “보내주거라. 하늘로.” 추호도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그때 유진산이 한 손을 올려 보이며 소리쳤다.
“멈춰라!” 공격하려던 산적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정지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채주보다 유진산을 상급자로 느끼고 있었다.
“어떤 고견이 있으신지요?” 풍호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그녀를 살려두어야 흑산도 또한 미래가 있을 것이네. 우선 가두어두시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풍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포박하여 끌고 가라.” 그녀는 충격에 영혼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무당파가 고작 산적들에게 이토록 박살 날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포박되어 끌려갈 때까지 조금의 저항도 없었다.

그때 부채주인 왕규가 풍호에게 다가와 물었다.
“형님, 도사 놈들을 다 죽였으니 무당파가 가만히 있질 않을 겁니다.” “어차피 우린 이곳이 아니면 갈 데도 없어. 끝까지 맞서 싸운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유진산은 코웃음을 쳤다.
“한 번 이겼다고 자신감이 넘치는군. 무당파의 정예고수와 비교하면 이놈들은 조무래기에 불과하네.” “하오면,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유진산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무당파는 화산파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 그리고 화산이라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몇 년 전 화산에서 열린 후기지수들의 비무대회.
당시 무당파의 제자가 화산파의 제자를 실수로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 뒤로 두 문파의 사이가 어색해졌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그리고 유진산은 이 부분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사들의 의복과 무기, 소지품들을 모아 화산 근처의 곳곳에 뿌려두시게.” “이간계(離間計)를 사용하자는 말씀이시군요? 화산파에 당한 것처럼 꾸며서요. 하지만 무당파에서 과연 속아 넘어가겠는지요?” “당연히 안 속겠지. 단지 추적에 혼란을 주기 위함이네. 당분간은 이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어르신의 계략은 볼수록 놀랍습니다.” “계략이 아니라 지혜라고 말해주게. 그렇게 말하니 내가 꼭 악당 같아 보이지 않는가.” 그때 산채 뒤쪽에서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뒤편의 안전한 곳에 숨어있던 유설이었다.
“하배!”
유진산은 반사적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벌렸다.
“허허! 여기 숨어있었구나,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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